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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자작소설

데네볼라 이야기 - 튜토리얼 (1)

튜토리얼

  간단한 퀴즈 하나를 맞춰보길 바란다.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들이 틀을 깨지 못한 한가지가 있다. 발상의 전환이 부족한 것은 아니고, ‘고객만족’ 서비스를 위한 몸부림이라고도 해야 정확하다. 무엇일까?
  그  절대불변의 한가지는, 바로 ‘캐릭터 생성’ 아닐까.
  기술이 나날이 발전함에 따라, 이제는 캐릭터의 커스톰 마이징(캐릭터 신체 변형 및 성형 기능)의 범위 역시 놀랄 정도로 넓어졌다. 불과 몇년전에만 하더라도 기껏 얼굴 조정으로 그쳤던 커스톰 마이징이 지금와서는 얼굴은 기본, 신체 비율을 뛰어넘어 가슴 크기까지 설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우뚝 올라섰다.
  하지만 일단 가슴 없는 남자인 나로썬 의미불명.
  스타 레전드 역시 그 틀은 깨지 못한 듯 보였다. 가상현실로 로그인하자마자 눈 앞에 떡하니 들이대는 이 ‘캐릭터 생성’ 버튼을 보니 말이다.
  “캐릭터 생성… 분명히 캐릭터 면상은 내 얼굴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스타 레전드에서 캐릭터는 1인 당, 1개 제한이라고 했다. 홍채 인식 기술을 이용하여 구현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던 그 TV광고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탓에 잘 기억하고 있다.
  “캐릭터 생성.”
  「캐릭터 생성을 시작하기 전, 준비 단계를 거칩니다. 홍채 인식을 준비합니다. 30초간 눈 앞에 빨간점을 응시해주세요.」
  시스템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응수하는 그 목소리엔 약간의 기계음이 섞여있어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에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그 기술력에는 내심 감탄하고 말았다. 눈 앞에 붉은 빛이 번쩍 거리며 눈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시스템은 한마디를 뙇 내뱉었다.
  「이미 생성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10초 후, 해당 캐릭터로 로그인 합니다.」
  “아? 자, 잠깐! 난 캐릭터 생성한 적 없다고?”
  「캐릭터 이름, ‘아엘’ . 2달 전, 2045년 10월 31일에 생성하셨습니다.」
  “2달 전? 무슨 개소리야! 게임 출시가 바로 어제였는데!”
  감정(뇌)없는 시스템은 가차없이 넘어갔다.
  「로그인 합니다.」
  “야, 인마!”
  바닥으로부터 빛이 치솟기 시작했다. 마치 중력이 없어진 것 처럼, 나의 발은 바닥으로부터 떨어지며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화악하고 번져오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하며, 나의 몸은 작은 하나의 비눗방울이 되어 자유로이… 이딴 나레이션 필요 없어!
  아엘? 2달 전에 생성? 이게 무슨 고양이 다이빙하는 소리야? 버그냐? 시작부터 버그인거냐?
  그러나 떠들든 말든, 내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밝은 빛이 극한에 올랐다고 생각되는 그 시점, 빛은 나를 삼켰다. 동시에, 추락했다.
  쿠웅.
  “아욱!”
  아주 잠시동안 끊어졌던 내 의식은 큰 충격과 함께 돌아왔다. 무언가 발 아래가 허전하다 싶었더니, 나는 이상하게 얼굴부터 땅으로 처박히며 로그인 되었던 것이다.
  가상현실 주제에 끝내주게 리얼한 탓에, 통각도 그대로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부어오른 머리통을 부둥켜 쥐었다.
  뭐냐 이게!
  “아우우… 시작하지마자 이게 대체 무슨… 어?”
  울상을 지으며 돌아본 주변은 온통 풀밭이었다. 무릎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그런 잡초가 잔뜩 널린 곳이다. 군데군데 바위와 나무도 심심찮게 보였다. 근처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이곳이 해안가 근처라는 것을 시스템 알림 대신 알려주고 있었다. 정말로 자연 그대로를 구현한 가상현실이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절경이었다.
  “이, 이게 그래픽?”
  우리나라 게임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고, 흔히 실사라고 불리우는 그래픽은 오래전에 구현되었지만 이렇게 실감 넘치는 풍경은 또 처음이다. 마치 그래픽 하나하나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
  근데 그런 건 어찌되어도 좋고, 대체 여긴 어디냐는 것이다.
  “아무리봐도 바닷가 근처 같은데… 어, 이거 지도는 어떻게 불러오는 거지?”
  그러자 바로 화면 구석에서부터 시스템 창 하나가 날아왔다. 시스템 창 위에는 ‘MAP’ 이라 적혀 있었으며, 그 안에는 녹색 점 한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주변에는 푸른 점이 몇 개가 제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이외에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되먹은 게임인지 도움말 하나 없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녹색 점은 아마도 나를 뜻하는 것 같은데… 이 푸른색 점은 뭐야? 자연물인가?”
  나는 손을 휘저어 지도창을 날려버리고 상태창을 외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구석에서 시스템 창 하나가 날아왔다. 여느 게임이 그러듯, 상태창에는 내 간략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중요한 건 진짜 문제점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캐릭터 이름: 아엘
  종족: ???
  나이: 18
  성별: 여자
  현상금: 0 코시
  국가: 아이슬란드(멸망함)
  * 당신이 소속하여 있는 국가는 없거나, 멸망한 상태입니다.
  * 국가가 멸망했을 경우, 현상금은 없어집니다. 하지만 범죄 기록과 추적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 현재 월드에 알려지지 않은 종족입니다. 인류학자, 또는 고고학자를 찾아가십시오.
  * 플레이한 시간은 78초입니다.
  * ──────────────────── *

  “… 뭐시여 이게?”
  종족 불명? 국가가 멸망해?
  플레이 시간이 78초인데, 설마 캐릭터를 생성하자마자 내 나라는 외세의 침입을 견디지 못해 역사의 막을 내렸다던가… 78초만에 멸망하는 나라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이딴 거!
  “애시당초 캐릭터를 만든 기억도 없단 말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활한 바다를 등지고 있는 울창한 숲. 그리고 아무도 없는 필드. 베타 테스터 유저들의 말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공략 동영상에서는 분명 시작 마을을 어슬렁 거리다보면 한가해보이는 마을 사람이 말을 걸고, 마을에 대한 소개와 퀘스트를 받게 된다고 했는데 내 눈 앞엔 그저 대자연 뿐.
  하지만 내 인벤토리에는 공략 영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한가지 아이템이 더 들어 있었다. 편지였다.
  편지 아이콘을 손으로 터치하자 검은 연기와 함께 눈 앞에 편지가 나타났다. 편지의 발신자는 ‘직장’ 이라고 적혀 있을 뿐.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한가지 시뮬레이션이 초고속으로 진행 중에 있었다.
  설마 이 모든 사건의 흑막이 그 인간은 아니겠지!
  손으로 편지를 터치하자 눈 앞에 영상 한개가 펼쳐지며 재생되기 시작했다.
  「하하, 애정하는 후배여.」
  “…….”
  그리고 하필 이 인간이야. 초고속으로 불안해지는군.
  「나로부터의 선물은 잘 받았나? 처음 접속할 때, 캐릭터가 이미 생성되어 있었지?」
  「사실 알고 있었겠지만, 이번에 네가 해야할 일은 요컨데 테러라는 거지. 좋게 말해서 잠입이라고 해두자. 여하튼 우리 회사에서는 네 신상정보가 들통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줬다는 걸 알아둬. 네 캐릭터의 신상정보는 모조리 엉터리. 아마도 GM에게 들킬 위험성은 상당히 줄어들 거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스타 레전드의 모든 유저들의 외모 변경은, 자신의 외모에서 ±10%까지만 조절할 수 있다는군. 하지만 이 역시 네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야. 현재 네가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는, 내가 직접 컴퓨터 그래픽으로 수정한 외모이니까. 아마 아무도 못알아볼걸?」
  다짜고짜 설명으로 시작한 상사의 말은 청산유수로 퍼져나왔다. 뭐 대부분 쓸데없는 헛소리다. 핵심만 뽑아보자면 그의 말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현재 이 캐릭터의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가짜 아바타로써, 나의 얼굴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캐릭터의 신상정보는 모조리 엉터리이므로 설사 GM에게 호출된다고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여유롭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리.
  허, 그래도 꽤나 세심하게 준비는 하긴 했구나. 무턱대고 게임속으로 밀어넣은건 아니라는 거지?
  하긴, 그렇다면 지금 내 상황이 왜 이런지도 납득이 가긴 하지.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 때, 영상 속에 있는 상사의 얼굴이 음흉하게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가 당당하게 손가락을 하나 척! 들어올렸다.
  「하지만 충분히 주의하도록 해. 앞으로 네가 이 게임에서 있을 모든 사건들에 대해, 우리 회사에서는 전면으로 부인을 할 것이니까. 만일 네가 곤란한 일에 처하게 되어도 우리는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거지. 알아 들었어?」
  “아?”
  「또한 현재 그 캐릭터의 성별은 여자로써 네가 잠입을 위한 테러범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감출 수 있으며…」
  “잠깐만요, 개놈아.”
  「제한 시간은 1년. 회사에서 꽁짜로 퍼먹여주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1년 내로 게임을 끝내버릴 생각을 하라고.」
  「그럼 초보자 마을에 마왕을 소환할 때 까지 힘내 줘☆」
  삑. 영상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마치 90년대 마법소녀물의 여주인공처럼, V자로 펼친 두 손가락을 눈가로 가져간 뒤 윙크를 찡긋! 헤쭉 웃으며 영상을 종료하는 그 면상을 보자, 나의 전투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만일 상태창에 분노라는 스탯이 있었다면, 지금 나는 ‘광전사’ 라는 타이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 장담한다. 이마에 힘줄이 귀엽게 도드라졌다.
  “힘내긴 뭘 힘내! 내가 미쳐어어어어어어!
  지금 다시 보니 이 캐릭터, 머리카락이 길어! 우와, 피부가 하애졌네. 무엇보다 가슴이 빵빵해졌잖아.
  나는 주변에 있는 물 웅덩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5초간의 소리없는 침묵이 흘렸다. 물 웅덩이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던 개미 한마리가 광폭한 거인으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 죽이겠다, 회쳐버리겠어!
  “로그아웃!”
  「네트워크 안정을 위해 로그인하고 1시간 이내로는 로그아웃이 불가능합니다.」
  “전화 연결!”
  「해당 기능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하는 시스템 알람 때문에 몸에 힘이 빠진다. 어느정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가차없이 내팽개쳐지니 이건 그야말로 거렁뱅이가 된 것과 다름없지 않는가.
  몰려오는 정신적 쇼크에 나는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좌절포즈로  쓰러진 내 머리 위로 그라데이션이 내려오는 거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제껏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부류의 인간 중 하나가 넷카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훌륭한 넷카마가 되어버렸다.
  아니, 내 의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얼굴을 맞대고 플레이하는 가상현실이라고! 흔하디 흔한 컴퓨터 게임이 아니란 말이야!
  “… 복귀하는 날, 죽여버리겠어.”
  처녀귀신이 광속으로 빙의되어 버렸다. 나는 불특정다수 암살 계획을 중얼거리며 비틀비틀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일이 이리저리 꼬이긴 했지만, 결국 해야할 일은 바뀌지 않았다. 쪼잔하고 더러운 회사에서 365 + 1일의 기회따위를 줄 리가 없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이런 꼴로 돌아다니는 것도 사양이다. 죽을 맛이네.
  시간적 배경은 여름인지, 아직 따가운 햇살을 피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눈 앞에 펼쳐진 모래 사장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딱 봐도 엄청나게 거대한 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에는 바다, 뒤로는 숲. 나는 졸지에 서바이벌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 설마 밤이 되면 몬스터가 리젠된다는 싸구려 설정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보니 공략집에서 그런 말을 봤던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하루 종일 섬을 돌아다녀보자는 계획은 틀어져버렸다. 밤이 될 때 까지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한다면, 몬스터와 함께 밤하늘을 보면서 낭만을 새기게 될 상황에 처하자, 다리가 절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와아.
  결국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숲 속에 그럴듯한 동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 몰골은 꽤나 대단해졌는데, 고작 30분 사이에 품바각설이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깡통 두들기며 춤만 추면 딱이겠는걸. 에헤라디야! 못살겠다, 다 갈아보자! 믹서기로 드르르르르!
  “… 그건 살인사건입니다만.”
  “내 망상에 멋대로 끼어들지마!… 어, 어라?”
  그러고보니, 나 지금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거지?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 눈 앞에는 훤칠하게 생긴 남자가 한명 있었다. 아니, 소년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는데, 난데없이 튀어나온 이 소년 때문에 나는 꽤나 놀라버렸다. 그러니까 얼마나 기겁했냐하면, 앉아있던 바위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버릴 정도로. 쿠당!
  “아, 아엘 양은 리액션이 꽤나 크시네요.”
  떨떠름하게 안부를 묻는 소년이 손을 내밀어 뒤로 자빠진 나를 부축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버린 소년의 손을 잡고 일어난 내 표정이 좋을리가 없다.
  동굴에서 살다가 나온 사람─ 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는데? 설마 섬 주민 NPC?
  주민이라면 이 섬은 무인도가 아니라는 의미이고, 주민이 아니라면 이 섬은 조난자가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란 뜻인데….
  소년은 싱겁게 표정으로 입을 다셨다. 그리곤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바로 응수했다.
  “아쉽게도 어느 쪽도 아니네요. 반갑습니다, 닉네임 아엘 님. 당분간 당신의 서포트를 해줄 가이더(guider) 코드네임 PPJ입니다.”
  그리곤 한쪽 눈을 찡긋─.
  “제이, 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소년치곤 너무 성장해버린 것 같은 제이의 첫 인사에 나는 얼이 빠져버렸다. 그렇게 갑작스런 NPC의 등장, 당황스럽다고 이거.
시대적 배경은 2045년.
여성가족부 건재함. 
 소설의 꽃은 역시 다양한 표현법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다들 서평이나 논술의 글을 써보는게 좋을 것 같군요. 글쓰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언젠가 한번 주인공 삽화를 넣어보고 싶습니다만, 콘티고 뭐고 전혀 안짜뒀습니다.
이 소설은 노벨링으로 변환되었습니다. (버전: 오전 12:52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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